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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현대천문학사에 대한 아마추어 연구 - 봅시다
    카테고리 없음 2020. 1. 25. 08:36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하나폰으로부터의 해방과 분단, 그리고 바로 최근까지의 역사를 가져올 것입니다. 현대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할 수 있지만 자신은 기초과학, 특히 천문학의 관점에서 현대사를 기술하는 데 흥미가 있다.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서 우주 천문학은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누가 왜 천문학자가 되는 것을 꿈꾸며 어떻게 기회를 얻었을까. 사회적으로 천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서 아주 최근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었을까? 아내 sound에게는 자신의 역사 조사를 순수 천문학만으로 한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록을 보고, 분야의 구분이라는 것이 시각에 따라 계속 변화해 온 sound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우주 과학이나 기상학, 항해술 등을 둘러보고 천문/우주 분야를 3개 영역에서 스스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첫째는 순수 천문학입니다. 우주에 있는 물체의 본질에 대해, 우주의 형태와 역사에 대해 탐구하는 분야입니다. 두 번째는 우주개발입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달에 사람을 보내는 등 인류의 실제 공간 개척에 관여한 것입니다. 셋째, 정부 업무로서의 천문학을 소견할 수 있다. 시각과 거리를 측정하고 역서를 편찬하는 것, 우주로부터의 위험을 예측하는 것 등입니다. 현대사는 아니지만 그 이전에는 화식이나 월식 등이 왕권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더 중요했던 분야입니다. 이 3개 분야는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사회가 주는 의미가 매우 같지는 않다.아직 자신은 초반에 던진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자료를 조사하고 소견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답을 찾아나가겠다. 본 글에서는 첫 번째 순수천문학의 영역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합니다. 서방 세계는 하나 900년대 중반에 순수한 천문학에서 한 변이를 겪었는지 와서 바로 당시 우리 나라 신라의 귀추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 나라 신라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은 1910년부터 1945년 동안 현대 천문학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도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10년까지는 천문학자들은 태양이 우주 중심인 우리 은하가 우주 전체와 소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멀리까지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관측은 더 정밀해졌고 우리의 우주에 대한 소견이 바뀌게 됐다. 태양을 은하계 변두리에 두었다. 그래서 은하 내부의 성운이라고 생각한 천체 중 몇 개가 은하 밖에 놓인 다른 은하입니다. 그들은 은하계에서 급속히 멀어지고 있었다. 복판 없이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했을 때, 우주관의 대격 변화가 있었을 때가 이 시기이다.조선 후기에 우리만의 순수천문학 전통이 있었는지, 계속 추구한 사람이 있었는지 아직도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오래된 서양 천문학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는 점이었다.그런데 우리 자신이라는 이 시기에 새로운 서양천문학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은 거의 없었다. 일본이 세운 학교는 천문학 수업을 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신이 미국에 의해 세워진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전신)의 수물과에서 천문학 수업이 이루어졌지만 천문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 한 사람,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으로 알려진 이원철 씨가 있었다. 그는 연희 전문 대학 수물과를 1919년에 1회로 졸업하고 선교사의 후원을 받아 오메리카우에 유학 가서, 1926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그래서 바로 귀국해서 연희전문학교 교수로서 부입니다.수학, 물리학, 천문학 강좌를 담당했어요. 해방 후에는 중앙기상대(옛 기상청)의 대장을 지냈다. 대학에서도 관상대에서도 마진 관측 시설이 없기 때문에, 순수천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는 없었을 당시 신라인들이 서양천문학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더라도 관심 있다면 천문학에 관한 약간의 뉴스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원철은 대중 강연에 주력하면서 과학에 대해, 특히 천문 및 기상 현상과 우주에 대해 알려주는 신문 기사를 가끔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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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기사를 접하며 1제 강점기 한국의 민족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많은 사람이 우주관의 전환을 받아들였을까. 순수천문학이란 대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자료를 좀 더 찾아봐야겠어. 아직 상상에 맡길 뿐이었다 우리 행정부에 순수한 천문학의 기회는 시간이 많이 흐르고 1958년에야 열리게 됐다. 서울대에 처음으로 천문학기상학과가 설립돼 천문학을 전공하려는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korea천문 학회가 결성됐다. 1967년에는 국립 천문대 설치 제안서가 통과하고 1974년 완공됐다. 1973년에는 korea천문 학회가 세계 천문 연맹(IAU)에 가입했어요. 그러나 이때는 경제개발 시기, 순수과학에 투자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순수천문학을 추구한다는 목적만으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 어느 서울대에 천문학과를 설립하는 데 자극이 됐고, 정부가 천문대 설립 프로젝트를 통과하는 요인이 됐는가. 이는 2부(우주 개발)와 3부(정부 기본 업무로서 천문학)에서 더 자세히 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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